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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바람도 불고 나들이 하기 좋은날입니다.
봄여행하기 좋은곳이 많지만 햇볓이 따가운 날이면
아무래도 그늘이 그리울수 밖에 없는데요. 이런날 가기좋은곳이
숲이 잘보존된 왕릉도 좋은데요, 서울에서 가까운 동구릉,서오릉 좋죠.
요즘이야 외우지 않지만 30대이상인 분들은 어려서 많이
외웠을 것에요 조선왕이름? 조선임금계보도 물이죠.
대부분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정도까지는 잘 외우지만
끝까지 외우는 사람들은 드물었죠.
그래서 오늘은 조선임금계보도와 함께 조선왕이름, 정확히 말하면
이름이 아니라 묘호라고해야 하는데요, 우리가 흔히아는 세종, 고종등은
임금의 이름이 아니라 사후에 이름을 받치는 묘호라고 하구요 임금의
이름은 따로있으니 오늘 제가 알려드리께요.
먼저 흔히 임금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 묘호에 대해 아라볼께요.
어떤임금은 태조, 세조, 선조 등 뒤에 조가 붙어있고 어떤 조선왕 은
세종, 성종,고종등 종이 붙어있죠.
그럼 조와종 의차이는 뭘까요? 임금 이름 조와종 의 차이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여러가지의견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대세적인 의견을 보자면
조와 종의 차이는 없다는 것입니다.
많이들 "조" 이름이 붙은 임금이 "종"이 붙은 이름보다 높다고
알려져있는데, 원래는 이에대한 차이가 없었다고 하죠.
묘호는 중국에서 유래한것으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국가들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왕조의 풍습을 따라것이 많아서
묘호또한 중국왕실에서 따라한 것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묘호하 하면 통일신라의 초대왕 김춘추의
묘호가 태종무열왕이죠. 이는 신라가 당나라에 크게 의존했던
탓인듯 합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당연히 몽골에게 지배를
당하기전까지는 당연 묘호를 사용했구요.
중국임금 묘호를 정하는 기준은 원래 중국고서 예기에서
비롯되었은데 '가계의시조는 조가되고 그이후에는 종이된다'
내용과 사물기원이라는 고서의 "공이있으면 조를 쓰고 덕이있으면
종이된다" 라는 것에 따라 줄여 "조종공덕"에 따라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나라를 세운시조에 조를 붙였는데
태조, 고조라는 왕의이름이 많죠. 그리고 나라를 세운업적에
버금가는 왕에게는'태종' 이라는 묘호를 사용했으며,
사회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완성한 왕에게 '성종'이라는
묘효를 올렸다고 하죠.
조선을 건국하면서 중국을 부모의나라라고 해서 사대를 했기때문에
조선을 세운 왕 이성계 묘호를 태조로 했으며,
태종 이방원의 경우에는 세종임금이 자신의 아버지 업적을 보다
추겨세우기위해 나라를 세운왕의 버금가는 묘호인 태종을 선택한것인데,
세종임금 시기에 문무신료들이 이방원의 수하들이 많았으므로 신하들이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대 조선왕중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세종임금의
경우 조를 높게 본다면 세조가 되어야 하겠지만 세조는 그의아들
수양대군이 가져가게 되죠. 이를 보면 후대왕의 뜻이라기 보다는
힘있는 신하들에 의해 결정되어진 이름이기에 조종공덕과는
무관해 보입니다.
물론 자신의 수하를 두지 못한 임금은 묘호조차도 오랫동안 받질
못했으니 그 임금이 바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생에게
왕을 선위한 조선2대왕 정종이죠.
세조의 경우에는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역적이나 마찬가지임에도
그의 아들 예종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많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ㅁ쓰고 이시애의난과 이징옥의 반란을 평정한 공로도
나라를 구했다는 명목으로 조를 추세했다고 하네요.
그러했기때문에 세조의 수하 한명회등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았던
탓에 세조는 과한 묘호를 받았다고도 보여집니다.
뿐만아니라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어린나이에 목숨을 잃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살아가던 단종의 경우에는 숙종때에 서야 신원복권과
시호를 추서받게 됩니다.
만약, 조와종의 개념을 정확히 정확했다면 가장 잘못적용된
왕이 아마도 선조 일것입니다.
최초 선조의 묘호는 선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광해군이
국난을 극복했다는 공적을 내세워 선조로 바꾸게 되죠.
임진왜란을 가져오게한 주범이면서 나라와백성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하려했던임금, 충신을 질투하고 모함했던왕
그래서 이순신장군이 살았다면 백퍼 역적으로 후대에 남았을것이는것이
여러학자들의 의견이죠.
요즘같았선면 탄핵되어 마땅했던 임금이죠.
중종의 경우에는 세조의 기준을 따른다면
폭군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나라를 다시세운것나
마찬가지여서 중조가 되는게 마땅하겠지만 그의아들
인종이 워낙에 힘이없고 반대판의 힘이 쎗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성종임금을 계승했다는 명목으로 중종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선조이후에 조서중기 묘흘 쓴 왕은 인조임금이죠.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웃기게도 나라를 다시세웠다는 명목하게 조를 추서받게되는데요,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분명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봅니다.
인조반정만 아니었다면 병자호란도 없었을것이며 조선이
그처럼 쇠락해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는 조종공덕이 무색할만큼 조 를 남발
하게되는데요, 영조는 원래 영종, 정조는 원래 정종, 순조는 원래
순종의 묘호였지만 고종이 영조는 애민정신을 정조는 여러변란을
극복했다는 이유를 들어, 순조는 카톨릭을 막고 홍경래난을 제압
했다느는 이유를 묘호를 변경했습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조를 쓴 임금이 창업조에게만 있어 조를더 높이
평가했던것이 맞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시대 권력자들의
의해 맘대로 해석되어지고 추서된 면이 있어 조와종의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다음은 조선왕계보도 와 함께 묘호를 조선왕이름 이라
알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진짜 이름을 알려들리께요.
임금의 이름을 휘(諱)라고 하는데요 생전에 살아있을때이름이죠.
한자에서 보듯 꺼릴휘, 죽은사람의 생전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중국진나라때 유래된 풍습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의
이름을 뜻하여 백성들이 사용을 금했고 그렇기 때문에 왕실에서는
임금의이름을 모두 외자로 하고 잘 쓰지않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양반계급의10%에불과했고 대부분의 백성이 성이
없었는데 굳이 백성들을 위해 피해 이름을 지었다는것도 지나치게
미화되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의 대부분의 성씨들은 조선후기에 만들어지거나
족보를 산경우가 대부분이라 여러분들중에서 실제 양반인 사람들은
거의 없을거에요 ㅎ
그럼 조선왕계보 와 이름을 알아볼계요
1대왕(태조): 이단, 재위기간 6년
2대왕(정종): 태조의 2남 방과(이경), 재위기간2년
3대왕(태종): 태조의5남 방원, 재위기간18년
4대왕(세종): 태종의 3남 이도, 재위기간32년
5대왕(문종): 세종의 장남, 이향, 재위기간 2년
6대왕(단종): 문종의 장남, 이홍위(유일한휘가두글자), 재위기간3년
7대왕(세조): 세종의2남 이유, 재위기간13년
8대왕(예종): 세조의2남 이황, 재위기간1년
9대왕(성종): 세조의손자(세조1남의경세자의2남) 이혈, 재위25년
※ 예종의 장남 제안대군이 있었으나 왕위에서 제외되고 한명회가
일찍히 성종(자을산대군)과 딸을 혼인시켜 성종을 왕위로 세웠다는주장.
10대왕(연산군): 성종의 장남 이융, 재위12년
11대왕(중종): 성종의 2남 이역, 재위기간38년
12대왕(인종): 중종의장남 이호, 재위기간1년
13대왕(명종): 중종의2남 이환, 재위기간22면
14대왕(선조): 중종의손자(중종7남덕흥대원군3남) 이공, 재위기간41년
조선최초 방계승계이자 적장자, 적장손이 아닌후궁의 자손으로 왕위계승
15대왕(광해군): 선조의2남 이혼, 재위기간15년
16대왕(인조): 선조의손자(선조의5남정원군1남) 이종, 재위기간26년
17대왕(효종): 인조의2남 이호, 재위기간10년
18대왕(현종): 효종의장남 이연, 재위기간15년
19대왕(숙종): 현종의장남 이순, 재위기간46년
20대왕(경종): 현종의 장남 이윤, 재위기간4년
21대왕(영조): 숙종의2남 이금, 재위기간52년
22대왕(정조): 영조의손자(영조의2남사도세자의장남) 이산, 재위기간24년
23대왕(순조): 정조의2남 이공, 재위기간34년
24대왕(헌종): 순조손자(순조장남효명세자의장남) 이환, 재위기간15년
여기서부터 엄청 복잡해집니다.
25대왕(철종): 정조의동생(장헌세자(사도세자)2남)은언군의아들전계군의장남 이변, 재위기간14년
26대왕(고종): 사도세자의3남의 은신군의 아들인 남연군의 아들이하응의2남 이형, 재위기간44면
27대왕(순종), 고종의 2남 이척, 재위기간 3년